2025년 회고
바야흐로 연말, 회고의 제철. 지난 1년을 4000자로 압축해 봤습니다.가까운 지인들은 이미 다 알지만, 저는 통계학을 싫어했습니다. 통계학이 싫어 행정학을 복수전공하고,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보는 등 나름 방황을 했습니다. 결국 모든 걸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
바야흐로 연말, 회고의 제철. 지난 1년을 4000자로 압축해 봤습니다.
졸업 🎓
가까운 지인들은 이미 다 알지만, 저는 통계학을 싫어했습니다. 통계학이 싫어 행정학을 복수전공하고,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보는 등 나름 방황을 했습니다. 결국 모든 걸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험계획법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요, 하필이면 통계학을 싫어지게 만든 교수님의 강의였고 전공 필수라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갱지에 영어가 떡칠된 책을 들고 어떻게 F를 면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복학 3-4개월 전 ChatGPT가 세상에 등장했고, 저는 ChatGPT를 활용해서 책을 이해했고 결국 수업을 B+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학점 인플레가 만연한 상황에서 B+가 뭐 대수라고 글을 장황하게 썼냐고 하실 수도 있겠으나, 저는 이때 확신했습니다. 앞으로 부지런만 떨면 내가 원하는 필드에서 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요.
다음으로는 행정학입니다. 두 분의 존경하는 행정학 교수님들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박OO 교수님은 “민관이는 통계학과 같지도, 행정학과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관점이 내 스타일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OO 교수님은 “발표가 뭔가 반항아 같은데 들어본 발표 중에는 가장 솔직하고 재밌었다.”라고 북돋아주셨습니다.
원래 수업 시간에 맨 뒷자리에서 코딩만 했는데, 칭찬을 들으니 더 잘 하고 싶어져서 행정학 수업 시간에는 딴짓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70-80 명 앞에서 내 주장을 과감하게 펼치는 것도, 잘못된 부분을 시인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재밌었습니다. 그나마 행정학을 전공해서, 학교를 졸업할 때 왠지 모를 시원섭섭함 같은 감정도 남들처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격증 🪪
백엔드를 처음 막 건드려보는 시점에서 SQLD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어차피 데이터베이스 공부도 해야 하니까 뭐라도 남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한 번 떨어졌습니다. 잠시 정보처리기사 이야기로 넘어가죠. 비전공자로서 전반적인 컴퓨터 공학 지식을 가장 얇고 넓고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정보처리기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긴 한데 세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현재 ADsP, SQLD, 정보처리기사 세 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랑할 목적도 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많이 안 했습니다. 불성실해서는 아니고요, 너무 불안했습니다. 쉬운 시험이든 어려운 시험이든 종류 가리지 않고, 공부를 시작할 때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전략을 하루 건너 변경했고 쓸데없이 이 책 저 책 구매량만 늘렸습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에 실패했던 패턴과 동일했습니다. 이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불안감에 떨면서 공부를 안 하는 것, 생각 없이 노느라 공부를 안 하는 것. 이 둘에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죠. 결국 불안감이라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불안해서 시도하지 않는 것은 탱자탱자 노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편의점 재고 정리도, 키오스크를 조립하는 일도요. 그런데, 나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놀지도 못하고 고민하는데, 실상 노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과감하게 결정한 뒤 실행했고 모두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자격증 몇 개 따는 것은 개발 실력과 문자 그대로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할 때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 깨달음까지의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시험이 계속해서 안 되었던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
Pullim은 제가 기획부터 배포까지 완료한 애증의 프로젝트입니다. 정말 고생 많이 했고, 그만큼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오늘만 무능하기로 했다’라는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는데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실제로 겪은 내용이 반영되어 있어서 너무 공감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필자는 카카오페이 2차 면접에서 초반과 후반의 상반된 분위기를 느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혼자서 이런 걸 [다 했다고]?”에서 “[혼자서] 이런 걸 다 했다고...”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고 회고했죠. 그런데 저도 최근 본 면접에서 동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협업 경험이 없으니 자신의 바운더리를 벗어난 작업에 취약할 것 같다는 관점의 피드백을 받았죠.
저는 띄워주는 말이라도 헛소리에 가깝다면 가볍게 튕겨내지만, 어떤 의견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나를 찌르는 말일지라도 쉽게 수긍하는 편입니다. 25년 회고 글이라, 모든 것이 결론의 형태로 제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성찰하고 있습니다. 더 고민하고 싶습니다. 모든 결론을 툭툭 내뱉고 싶지는 않습니다. 25년과 26년은 분절되지 않고 이어질 테니까요.
글 ✍️
올해는 velog에 약 100편의 글을 작성했고, 총 383편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미한 잉크가 선명한 기억보다 낫다”라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모든 것을 다 머릿속에 들고 있을 수 없어서, 다음에 동일한 문제를 만날 때 참고하기 위한 자료로서 작성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에 검색했을 때, 내가 작성한 글을 클릭하게 된 경험은 참 황홀했습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작성하게 된 글이 자존감의 기둥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23년 4월 26일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저는 기억합니다. 최소한 기술 부분에 있어서는요. 과거의 글들을 보면 참 창피합니다. 동시에 뿌듯합니다. 글의 수준이 달라졌고, 깊이가 달라졌으며, 쌓인 양이 달라졌거든요.
여전히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증거가 되어줍니다. 사실 글이라는 거, 누가 쓰라고 해서 쓰기에는 너무 귀찮고 힘든 작업입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요,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쓸 생각도 없었고요. 한마디로 “굳이?”라는 생각이 들죠. 어른들이 “남는 건 사진 뿐이야.”라는 조언을 줄곧 해주시죠? 저는 남는 건 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에는 그때 당시의 내 생각이 담겨있지 않아서, 현재의 시선으로 윤색하게 되거든요. 숫자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정량화 하자면 내년에는 500편 정도 넘기고 싶습니다.
SSAFY 🏛️
삼성청년 SW / AI 아카데미에 합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면접을 봤던 남은 회사들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비를 털면서 공부를 지속해왔는데, 삼성전자의 보호하에 용돈 받으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지원했죠.
여전히 몇 가지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세운 입장에서 외부 관계자들이 정립해놓은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아도 실무에서의 성장과는 비견할 수 없을 텐데, 단순히 오늘 좋다고 판단되는 선택으로 취업 시기가 불필요하게 늦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단 무엇이 됐든 주어진 기회 속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뽑아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마치며 🧧
28.9세의 원민관은 요즘 기술 밖 영역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프로그래밍이 좋아졌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지?”, “어떤 서비스를 세상에 남기고 싶지?” 이런 것들이요. 기술은 익숙해지면 그만인데, 이런 질문들은 정말 어렵게 느껴지더라구요.
보통 이런 종류의 글은 “다 잘 될 겁니다!” 식으로 마무리되는 게 국룰이긴 한데요,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네요. 여전히 불안하고 고민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나름대로 지난 1년을 진솔하게 공유하려 했습니다. 저의 고군분투 자체가 따듯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놈도 있구나. 고생 많구먼.” 하고 생각해 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조금 일하고, 많이 벌게 되시기를 소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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